수량의 위험성 - 사설

  • parcel
  • 입력 : 2004.11.04 15:15   수정 : 2004.11.04 15:15
지난 추석 전 택배 배송 특수기간 동안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분명히 경기는 침체됐다고 했음에도 택배물량은 또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택배업체에게 “물동량이 많다”는 것은 썩 기분 나쁜 소리는 아니다. 그만큼 인지도가 일반 소비자들에게 높다는 증거일 것이고, 많은 물량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규모를 과시할 수 있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순위 매김하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택배업체별 순위매김은 그만큼 브랜드 호감도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어떤 업체는 역사상 최대 일일 처리량을 기록했다느니, 또 다른 업체는 매년 40~50% 이상 택배 물동량이 증가하고 있다느니 한다.
더군다나 신생 택배기업들에게는 택배물량 증가율이 주는 의미는 더더욱 크다. 취약한 택배 영업 네트워크와 고용 인력들에게 본사의 안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이 보다 좋은 소재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물동량이 이만큼 느니까 비전을 가지고 매진하자”는 식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시기에 수량이 주는 이익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아니 더 위험성이 내포된 것 같다.
간단히 말해 채산성 없는 숫자 놀음에 적자만 불어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택배 평균 단가는 물론이고 기업택배 평균 단가가 바닥을 모르는채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얼마나 많이 취급하는가는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몇몇 소규모 택배기업들의 어려움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이들 업체는 추석 특수 기간동안 평소 처리량의 세 배, 네 배의 물동량 증가를 경험했다.
이 때문에 준비도 안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택배 물동량이 넘치면서 차량과 인력을 사전에 확보하지 못한 이들은, 배송지연을 막기 위해 운임보다 배가 비싼 개별화물 차량은 물론 오토바이 퀵, 콜밴 차량 등을 동원했다.
게다가 추석이 지난 지금까지 배송사고를 처리하지 못해 고객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처지에 놓인 택배회사 또는 영업점이 한 둘이 아니다.
뿐이랴! 영업소에서는 본사가 위험해 보이니 본사 송금을 이리저리 미뤄, 본사의 재정상황이 크게 악화되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소규모 택배회사의 문제만은 아니다. 대형 택배사들도 폭증하는 택배물량 때문에 제때 배송하지 못하는 사례가 다반사였다는 것이 후문이다.
설상 이런 일을 겪지 않은 업체들도 허탈하기는 마찬가지. 10여일이나 집에 못들어가고 물량 처리에 온 힘을 기울였지만 남은 것은 건당 100원, 50원 한단다.
최근 택배업계의 심각한 인력난은 이를 그대로 반영한다. 고생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누가 지원하겠나.
다행히도 일부 업체들은 고수익, 고단가 택배 화물만 취급하는 효율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
이제 대외적인 홍보 기준을 하루 몇 만개, 몇 십만개에서 글로벌 택배기업들처럼 순익 얼마, 매출 얼마의 형태로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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