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물류 巨木, 퇴임앞두고 젊은 카고인에 일갈
32년 에어카고人 코스모항운 김영두 상무 ‘역사를 남기다!’
12월 초 때아닌 한파와 눈발로 뒤덮힌 공항에 여전히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코스모항운의 김영두 상무(만 62세)가 말그대로 ‘공항바닥’에서 32년간을 지켜왔다. 공항물류에서 큰 어르신인 그가 이제 12월 말이면 완전히 퇴임하게 됐다.
1982년 김포공항시절부터 시작한 공항물류업무를 해오면서 현재의 인천공항의 에어카고 프로세스가 완성되기까지 그는 역사와 함께 했고 또 많은 역할을 주도적으로 했다. 전체 공항물류인들 뿐만 아니라 전체 항공화물업계에 큰 거목인 김 상무가 이제 퇴임을 앞두고 본지와 그동안의 회한과 젊은 항공화물업계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남겼다. / 김석융 부장
Q. 이제 곧 퇴임을 앞두고 계신데, 공항물류에 큰 어른이 그만두신다는 소식에 주위에서 섭섭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김 상무님의 빈자리에 많이들 아쉬워할 것 같습니다.
A. 1982년 7월 16일에 세계혼재항공화물(WAC) 공항사무소로 입사했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 3월 27일 지금의 코스모항운으로 옮겨 역시 공항 업무를 지금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32년간 일한 셈이지요. 이미 금년 4월 1일에 후임을 정해 놓았습니다. 이제 박수칠 때 떠나야지요. 회사에 부담을 주는 천덕꾸러기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구요.
사실 2년전에 공식적으로 퇴임했지만, 회사의 배려로 고문의 위치에서 공항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동안 도움을 주신 업계 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떠날 수 있게 해준 회사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Q. 32년여의 세월 동안 많은 히스토리를 경험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만, 가장 보람있었을 때와 가장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A. 가장 보람된 점이라 하면 물론 최고의 실적을 올렸을 때죠. 특히 One Master에 ULD 20장을 찍을 때가 기억납니다. 아마 이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은 기록일 것입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김포공항 시절 두바이행 차터 화물 38톤을 못 띄웠을 때입니다. 체크 리스트 과정에서 문제가 있어서 결국 비행기에 못 실었을 때 정말 아득했습니다. 이 때문에 1억원의 손해가 발생됐습니다. 故 김명환 사장님 앞에서 무릎꿇고 사죄를 했을 정도였습니다만, 사장님께서 “배우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갔다”고 한말씀만 하시고는 두번다시 그 일에 대해서는 얘기를 안하시더군요. 결국 나중에 다른 항공편으로 실기 했지만 돈을 떠나 어떤 경우가 있어도 화물을 못실은 적이 없다고 자부하던 당시로서는 그 일이 큰 공부가 됐습니다.
다른 아쉬운 부분이라면 콘솔사로서 월 5천톤을 하고 싶었는데 이를 이루지 못해 아쉽습니다. 이 목표는 故 김명환 사장님과 약속한 것이기도 했는데…
Q. 지금 공항 오퍼레이션을 보면 예전 김포공항 시절과 비교해 어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A. 한마디로 말하면 천지가 개벽했다고 볼 수 있죠. 김포공항에서는 모든 게 수동이었지만 지금은 전자동 아니겠습니까. 창고도 장비도 모두 남의 것 빌려다 썼지만 인천에서는 자가 창고, 자가 장비에다 전산시스템이 훌륭하게 갖춰졌습니다. 월 3천톤을 처리하는데 3명이면 될 정도이니 엄청나게 선진화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더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A. 스키드 툴(Skid Tool)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공항에는 2,400개 정도가 있으나 아직 500~600장이 부족합니다. 포워더, 항공사, 조업사 등이 함께 쓰는 이 장비가 날마다 부족해서 구하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공사에 기부 형태로 확보요청을 했으나 마지막에 틀어지게 되어 무척 아쉽습니다. 공사에서 자유무역지역에 주차장 및 편의시설을 만들 듯 같은 개념으로 지원해주길 바랬었습니다만, 결국 안됐습니다.
그리고 인천공항 토지사용료에 대해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면세점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형평성에서 크게 어긋난다고 봅니다. 외국적 기업이나 물류회사에게 50%의 토지사용료를 감면하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대기업 면세점에게 이 같은 혜택을 주는 것은 대기업만 살린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습니다. 공항에서의 비용이 높아진 만큼 아무리 내국 화물을 취급한다 해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차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Q. 말씀하신 것처럼 공항에서의 비용이 높아진 만큼 인천으로 오면서 포워더들이 공항인력을 줄이고 아웃소싱을 많이 늘렸습니다.
A. 그 점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공항 인력 감축에 대해 매우 회의적입니다. 인천공항으로 와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아웃소싱업체들이 kg당 30~40원으로 턱없이 비용을 낮춰 예전 김포에서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인천에서는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Q. 젊은 에어카고인들 특히, 공항물류인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A. 꿈과 목표를 가지고 직장생활을 해야합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초심을 잃지 말았으면 합니다. 초심을 잃지 말자는 것은 저의 좌우명이기도 합니다. 저는 입사 당시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각오였는데 그것을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나이가 들고 직급이 높아지고 거만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적군을 되도록 만들지 말고 도울 수 있을 때 도와줘도 아군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 도움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Q. 늘 건강하시고 퇴임후에도 후배들에게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후기
김영두 상무에게 퇴임후 계획을 묻자, 당장 놀고 싶다고 했다. 카메라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산 정상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재능대학 항공물류학과에서도 강의할 계획도 가지는 등 후배 양성에도 왕성한 활동을 할 예정이다.
32년 에어카고人 코스모항운 김영두 상무 ‘역사를 남기다!’
12월 초 때아닌 한파와 눈발로 뒤덮힌 공항에 여전히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코스모항운의 김영두 상무(만 62세)가 말그대로 ‘공항바닥’에서 32년간을 지켜왔다. 공항물류에서 큰 어르신인 그가 이제 12월 말이면 완전히 퇴임하게 됐다.
1982년 김포공항시절부터 시작한 공항물류업무를 해오면서 현재의 인천공항의 에어카고 프로세스가 완성되기까지 그는 역사와 함께 했고 또 많은 역할을 주도적으로 했다. 전체 공항물류인들 뿐만 아니라 전체 항공화물업계에 큰 거목인 김 상무가 이제 퇴임을 앞두고 본지와 그동안의 회한과 젊은 항공화물업계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남겼다. / 김석융 부장
Q. 이제 곧 퇴임을 앞두고 계신데, 공항물류에 큰 어른이 그만두신다는 소식에 주위에서 섭섭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김 상무님의 빈자리에 많이들 아쉬워할 것 같습니다.
A. 1982년 7월 16일에 세계혼재항공화물(WAC) 공항사무소로 입사했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 3월 27일 지금의 코스모항운으로 옮겨 역시 공항 업무를 지금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32년간 일한 셈이지요. 이미 금년 4월 1일에 후임을 정해 놓았습니다. 이제 박수칠 때 떠나야지요. 회사에 부담을 주는 천덕꾸러기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구요.
사실 2년전에 공식적으로 퇴임했지만, 회사의 배려로 고문의 위치에서 공항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동안 도움을 주신 업계 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떠날 수 있게 해준 회사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Q. 32년여의 세월 동안 많은 히스토리를 경험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만, 가장 보람있었을 때와 가장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A. 가장 보람된 점이라 하면 물론 최고의 실적을 올렸을 때죠. 특히 One Master에 ULD 20장을 찍을 때가 기억납니다. 아마 이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은 기록일 것입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김포공항 시절 두바이행 차터 화물 38톤을 못 띄웠을 때입니다. 체크 리스트 과정에서 문제가 있어서 결국 비행기에 못 실었을 때 정말 아득했습니다. 이 때문에 1억원의 손해가 발생됐습니다. 故 김명환 사장님 앞에서 무릎꿇고 사죄를 했을 정도였습니다만, 사장님께서 “배우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갔다”고 한말씀만 하시고는 두번다시 그 일에 대해서는 얘기를 안하시더군요. 결국 나중에 다른 항공편으로 실기 했지만 돈을 떠나 어떤 경우가 있어도 화물을 못실은 적이 없다고 자부하던 당시로서는 그 일이 큰 공부가 됐습니다.
다른 아쉬운 부분이라면 콘솔사로서 월 5천톤을 하고 싶었는데 이를 이루지 못해 아쉽습니다. 이 목표는 故 김명환 사장님과 약속한 것이기도 했는데…
Q. 지금 공항 오퍼레이션을 보면 예전 김포공항 시절과 비교해 어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A. 한마디로 말하면 천지가 개벽했다고 볼 수 있죠. 김포공항에서는 모든 게 수동이었지만 지금은 전자동 아니겠습니까. 창고도 장비도 모두 남의 것 빌려다 썼지만 인천에서는 자가 창고, 자가 장비에다 전산시스템이 훌륭하게 갖춰졌습니다. 월 3천톤을 처리하는데 3명이면 될 정도이니 엄청나게 선진화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더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A. 스키드 툴(Skid Tool)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공항에는 2,400개 정도가 있으나 아직 500~600장이 부족합니다. 포워더, 항공사, 조업사 등이 함께 쓰는 이 장비가 날마다 부족해서 구하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공사에 기부 형태로 확보요청을 했으나 마지막에 틀어지게 되어 무척 아쉽습니다. 공사에서 자유무역지역에 주차장 및 편의시설을 만들 듯 같은 개념으로 지원해주길 바랬었습니다만, 결국 안됐습니다.
그리고 인천공항 토지사용료에 대해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면세점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형평성에서 크게 어긋난다고 봅니다. 외국적 기업이나 물류회사에게 50%의 토지사용료를 감면하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대기업 면세점에게 이 같은 혜택을 주는 것은 대기업만 살린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습니다. 공항에서의 비용이 높아진 만큼 아무리 내국 화물을 취급한다 해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차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Q. 말씀하신 것처럼 공항에서의 비용이 높아진 만큼 인천으로 오면서 포워더들이 공항인력을 줄이고 아웃소싱을 많이 늘렸습니다.
A. 그 점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공항 인력 감축에 대해 매우 회의적입니다. 인천공항으로 와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아웃소싱업체들이 kg당 30~40원으로 턱없이 비용을 낮춰 예전 김포에서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인천에서는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Q. 젊은 에어카고인들 특히, 공항물류인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A. 꿈과 목표를 가지고 직장생활을 해야합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초심을 잃지 말았으면 합니다. 초심을 잃지 말자는 것은 저의 좌우명이기도 합니다. 저는 입사 당시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각오였는데 그것을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나이가 들고 직급이 높아지고 거만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적군을 되도록 만들지 말고 도울 수 있을 때 도와줘도 아군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 도움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Q. 늘 건강하시고 퇴임후에도 후배들에게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후기
김영두 상무에게 퇴임후 계획을 묻자, 당장 놀고 싶다고 했다. 카메라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산 정상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재능대학 항공물류학과에서도 강의할 계획도 가지는 등 후배 양성에도 왕성한 활동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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